2020 동덕여자대학교 회화학과 한국화전공 석사과정 수료
2012 동덕여자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23 이 향기를 함께 맡으면 참 좋겠네, M.collect.19, 서울
2022 품 _ 김모씨로부터, 소공헌 갤러리, 서울
2021 한 번 더 안아줘, 서진아트스페이스, 서울
진주는 오늘도 기념일, H 아트브릿지, 서울
2020 土rawing 展,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김펄의 여름은 3 to 10, 델문도 로스터스, 제주
진주는 혼란스럽다,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2015 김진주 개인전, 제퍼빈스, 서울
2014 Keep going, 아트스페이스 수다방, 서울
PEARL KIM, 호텔 MANU, 서울
2013 있다, 아트카페 KOONA, 서울
2012 존재, 정수화랑, 서울
다수의 단체전 참가
작업노트
<이 향기를 함께 맡으면 참 좋겠네> 2023.5
언제 샀나 기억이 가물한, 내 발이 신발인지 신발이 내 발인지 모를 '내가죽' 같은 신발을 신고 집 밖을 나선다.
어제 산 신발을 신고 나갔다가 길 한가운데서 기댈 곳조차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여차하면 빠르게 집으로 도망쳐야 하니까.
혼잡한 길을 지나 오랜만에 타러 내려간 지하철 탑승구에 서면 다글다글 어디론가 이동 중인 사람들이 많아서 놀란다.
재차 두리번거리고 내가 가는 목적지 경로를 수없이 확인하게 되는 막막함과 외로움. 운이 좋아 자리에 앉게되면 눈동자를 어디에 둘 지 몰라
무작정 내용도 잘 안보이는 인스타그램만 줄줄줄 올린다. 보통 <집 - 아기 - 작업실 - 개 - 동네산책> 뿐인 내 일상에
갑자기 낯선 사람들과 가깝게 존재하는게 편하지는 않다. 내가 아줌마로 안보였으면 좋겠다.
저 사람도 엄마일까 ? 과잠바 입고 학교가네 좋겠다. 저 사람도 아빠일까 ? 여러 생각이 든다.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음이 편하다. 이제서야 집에 뭐 필요한게 있었나 생각도 할 수 있고
이제부터는 나에게 익숙한 시간들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니까.
우리 가족은 저녁이면 다 같이 산책을 한다.
우리 중 기다림과 불안이 가장 길었을 올리의 벌름이는 코가 향하는 방향으로 걷는다.
올리는 의기양양하게 쉬도 하고 꼭 하수구 언저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응가를 한다.
나는 올리의 전방 5미터 바닥에 누군가 먹다버린 핫도그와 수다삼매경에 빠진 주인 손 끝에 매달려
사납게 짖으며 앞발을 들고 으르렁거릴 말티즈로부터 올리를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한다.
이제 막 세상의 작은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한 이도는 날아가는 까치와 비둘기를 발견하고 노랗게 웃으면서 반가워한다.
나무들 꽃들 하나하나 만져보고 웅얼웅얼한다. 할 얘기가 많은가보다.
유모차에 앉아있는 이도가 어떤 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만져보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하고 그 앞에 잠시라도 머물렀다 가야하는 세심함,
그리고 이도의 소중한 쪽쪽이가 입에서 빠졌는지도 체크, 아무런 문제 없음에도 계속 끄애앵 소리치면 무엇이 불편한지 추리해서 해결해야 하는 큰 역할까지 수행하며 걷는다.
각자의 일을 하다 만난 나와 남편은 걸으면서 나름 실없는 농담을 하거나 하루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나는 애와 개뿐이었던 하루의 끝에 만난 대화가 되는 어른 사람인 남편에게 하고 싶은 얘기들을 이 와중에도 두서 없이 늘어놓는다.
우리는 매일 저녁 한 시간 가량을 함께 걷는다. 치열했던 하루 중 내가 꼽는 몇 안되는 온전한 시간이다.
예전의 나는 크고 무거운 가방을 매고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걸어다녔다.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으로 어깨는 늘 양쪽 목덜미까지 올라붙어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그것에 대한 확신과 증명할 값어치가 돌아오긴 할지, 나는 무조건 정신없이 스스로 눈치껏 바빠야 했다.
별 일이 없어도 사회에 필요한 바쁜사람으로 보여야만 할 것 같아 쫓기듯 걸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지금, 우리는 매일 저녁 각자 다른 목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같은 시간을 걷는다.
함께 걷는 이 길에서 차츰 누구부터 하나씩 멀어질 것을 안다. 그 순간을 굳이 미리 생각하기 싫어 내일도 우리의 혼란스럽지만 행복한 산책길을 마음껏 누릴 생각이다.
< 품 _ 김모씨로부터 > 2022.12
그냥 휘갈긴 드로잉 한 장도 소중해서 모아두고, 그림을 그리면서는 머릿속에 있는 모양이
손끝을 통해 너무 그대로 잘나와서 그런 내가 자랑스러워서 심장소리가 점점 커졌다.
십년 전의 내 자존감은 바닥에 띠굴띠굴 굴러다녔지만 그림에 대한 자신감은 꽤 높았다.
내가 그린 모든 것을 애지중지 해서 학부 졸업할 때도 다 싸들고 와서 방에 모셔두었다.
추스릴 방법을 몰랐던 삐죽삐죽한 감정들을 종이에 한바탕 갈기고 나면 마치
친구들이랑 없는 돈 모아서 싸구려 곱창에 소주를 급하게 마시고 취기에 지하 노래방에서
꽥꽥 지르고나서 서비스 왜 더 안줘 손님도 없으면서 췌 하면서 계단을 나설 때의 개운함이 가슴속에 느껴졌다.
사실 이런거 저런거 빼면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
전공은 패션을 했고 옷 만들기도 적성에 맞았지만 성실한 학교생활을 하다 우수한 성적으로 패션회사에 당당히 입사해서 배운 것과 전혀 다른 일 처리만 하다가 몸과 마음이 헐리는 친구들을 보고 본능적으로 나는 반드시 저곳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도피처로 그림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잘했으니까 계속하지 ^-^ 가끔 가족들의 구멍 난 옷 기워주기, 떨어진 단추 달아주기, 우리 멍멍이 옷 만들어주기, 태교로 아기 옷 만들기 정도면 패션인으로서의 자아실현은 충분하다.
이십대가 되자마자 누구나 그러하듯 정체성 혼란과 우울의 시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좀 진했다.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아마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것 같은 느낌.
나는 칭찬과 신뢰 ,격려와 위로를 못받고 자라서 밀린 그것들을 한번에 다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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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모> 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세가지 다른 뜻에 내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리다.
첫번째로 <털 모>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치타는 맹수들 중에 가장 약하고 사냥을 못해서 달리기가 빠르다고 한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가야 하니까 말이다. 이 얼마나 다행이기도 하고 또 의외의 매력인가.
내가 낮은 자존감을 들키기 싫어서 짙은 화장과 과한 복장을 고집하다 그것이 취향이 되어버리고
나중에는 무엇이 먼저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한 현상과 닮아 있다고 우기고 싶다.
내가 그리는 털은 가시처럼 보이기도 잡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차적으로는 경계와 방어의 장치이지만 강하고 빼곡한 밀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털은
위협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추위와 해충들로 부터 몸을 보호해주며 무늬로 장식적인 효과도 준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페이크퍼 코트를 사 모은건가 싶기도 하고.
내 그림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나무의 형태도 털과 마찬가지로 그렸다.
사냥을 썩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이키 싫은 치타에게 안식이 되어 줄만한 나무이다.
두번째로 <어미 모>
나는 내 몸이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무서웠다. 언젠가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도 시달렸다. 오랫동안 무서웠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된 이상 나에게는 죽기전까지 엄마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엄마란 힘들다고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다. 마음에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이 서지 않은 가운데 나머지 모든 준비는 끝난 채로 만난 내 아기는 처음에 먹으면 자고 일어나면 먹고 쉬하고 자고 응가하고 먹고 잤다. 예상했던대로 나는 내 인생 모든 것이 끝났고 완전히 변했다며 절망하고 원망했다. 분유를 두 시간 간격으로 열 번 정도 타 먹이면 하루가 끝나고 다음날이 되었다.
올리는 아기를 돌보는 내 등을 보고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나 올리가 어떻든간에 아기는 매일 치열하게 일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아기의 샛노란 웃음 앞에서, 서운해 보이는 올리의 표정 앞에서 죄책감이 뽀글뽀글 올라와 밤에 울었다.
세번째로 <아무개 모>
산골짜기 밑 숨은 맛집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만 찾아가서 줄을 선다는 맛집 . 기다리는 바닥은 젖어 있고 메뉴도 두 개 뿐에 앉을 자리는 옹색하고 화장실도 꼬질한 집. 무심히 툭 나온 그릇에 담긴 음식을 한 젓가락 뜨면
방금까지 머리통을 꽉 채웠던 불쾌하고 막막한 불신과 축축하고 밀도 높은 주방 냄새까지 잊게 만드는 그런 맛집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같이 그리던 친구들은 하나 둘 씩 그만두고 나는 어느새 작가로 십년 정도 살았다. 굶어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어릴 때에는 작가님 소리 듣고 흰 벽에서 전시 하는게 장래희망이라고 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다가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정말 그렇게 되었는데 꿈을 이뤘다고 좋아하자마자 혹독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하루에도 수백 번 그래서 이 짓을 언제 그만두나 근데 나는 역시 그림을 그려야돼를 반복하는 싸움. 여기까지 온 이상 아무개 작가 김모씨에서 이제는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김펄이 되는것이 새로운 목표다.
가끔, 예상치 못한 헤프닝이 있을 때 마다 나는 일부 자책감과 동시에 열다섯 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나이를 의미하는 숫자를 빼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가까운 최근까지도 내 마음을 대부분 채우고 있는 것은 불안감이다. 손톱 밑 살을 물어뜯고 다리도 달달 떤다. 아마 나는 쭉 이렇게 살다가 불안한 할머니가 되겠지. 이 불안감은 들키기 싫어도 이미 내 마음을 차지한 만큼 결국 드러나게 되어있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왔겠지만, 그래도 미처 발견 못한 구멍들이 내 마음에 남아서 나는 이렇게 불안을 잘 느끼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분리불안도 심했고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자랐다. 균형이 깨진 애정이다.
아침에 올리와 산책을 하다가 동네 어린이집 앞을 지날 때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우는 애기들을 간혹 볼 수 있다. 그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알아서 주책스럽게 나도 눈물이 난다. 아들처럼 키우는 우리 올리 (5세, 사냥개)도 내가 출근준비를 하면 잠시라도 관심을 더 끌기 위해 보란 듯이 밥도 더 맛있게 먹고 장난감을 물고 옥상으로 유인한 뒤 멀리 떨어진 다음 던지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 아프다. 사랑을 적당히 알맞게 하는 것이 절대 가능하지 않아서 아주 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한 번 더 안아주고 뽀뽀도 한 번 더 해준다.